정부가 주택 매매시장 안정과 투기 억제를 내세워 실거주 중심 정책을 이어가면서 서울 임대차 시장의 공급이 줄고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 서울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집주인 실거주 의무와 다주택자·임대사업자 규제가 겹쳐 전월세 매물이 시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 세입자들도 새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우려에 기존 주택의 계약을 갱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세의 월세화도 진행되고 있지만, 임대차 시장 불안에 대응할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월세 계약 갱신 비중 상승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 중 갱신 계약 비중은 50.8%였다. 2023년 27.2%와 비교하면 23.6%포인트 오른 수치다. 올해 전세계약을 맺은 세입자 두 명 중 한 명가량이 새 집을 구하는 대신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기로 한 셈이다. 8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 총량은 전년 동기보다 25.7% 줄었고, 신규 계약이 38% 감소하며 전체 감소를 이끌었다.
월세 계약에서도 갱신 비중이 커졌다.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월세계약 중 갱신 계약은 39.7%로, 지난해 31.8%보다 7.9%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월세 거래는 전년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갱신 계약은 22.5% 늘어, 재계약 증가세가 전세보다 월세에서 두드러졌다.
계약갱신요구권 사용 비중은 갱신 계약 비중의 상승과 달리 하락했다. 전세 갱신계약 중 사용 비율은 지난해 56.7%에서 올해 53.3%로, 월세는 37.2%에서 30.3%로 낮아졌다. 현장에서는 임차인들이 당장 갱신요구권을 사용하기보다 임대인과 합의해 재계약하고, 추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남겨두려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전월세 매물 1년 새 감소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3832건에서 1만9853건으로 16.7% 감소했다. 월세 매물도 1만9480건에서 1만6406건으로 15.3% 줄었다. 전세 수요가 월세로 옮겨가는 현상 없이 전월세 매물이 함께 감소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월세 매물이 많은 서울 동북권과 서남권에서 감소 폭이 컸다. 노원·도봉·동대문구 등이 있는 동북권 전세 매물은 1년 사이 4328건에서 2459건으로 1869건, 43.2% 줄었다. 구로·금천·관악구 등이 위치한 서남권에서도 991건, 33.3% 감소했다. 서초구 디에이치방배(3064가구), 은평구 힐스테이트 메디알레(2451가구) 등 대단지가 올해 입주한 동남권과 서북권은 매물이 유지되거나 소폭 늘었다.
매물 감소가 연중 이어지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2022년 고점을 넘어 사상 최고 수준에 가까워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8월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5억6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12.4% 상승했다. 이는 통계 집계 이래 최고가였던 2022년 1월의 중위가격과 같은 수준이다.
임대차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 필요성
전문가들은 내년과 내후년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각각 약 3400가구, 1만 가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책의 초점을 임대차 물량 확대에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규 아파트와 연립·다세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단기적인 전월세 시장 안정 효과를 낼 수 있는 규제 완화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집주인에게 실입주를 강제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만 완화해도 매매용으로 묶여 있던 매물이 전월세 시장으로 흘러나와 당장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정부가 공공임대 확대를 약속하고 있지만 도심 청년과 1인 가구의 임대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다주택자에 혜택을 줄 수 없다는 프레임에 갇혀 민간을 배제하기보다는 건전한 민간임대사업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양질의 장기 월세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월세 시장의 완충 역할을 해온 기존 등록임대사업자 재고를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등록임대아파트 3만7000가구가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사라지면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어, 혜택을 한시적으로라도 되살려 기존 물량이 시장에 남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서울 민간 재개발·재건축은 착공까지 평균 14년 6개월이 걸리고 공공택지도 최소 5~6년이 소요돼 장기 공급 대책은 당장의 전월세난에 즉효가 없다”며 “등록임대아파트의 매각을 유도해 매매 물량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취지도 이해하지만 지금은 임대주택 재고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