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인공지능(AI) 메가프로젝트의 성패가 전력과 용수 인프라를 제때 공급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는 진단이 나왔다. 대한토목학회 KSCE 2026 건설정책포럼은 22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컨벤션센터에서 열려 기반 인프라 확충 방안을 논의했다.
박헌욱 한국수자원공사 수도개발처장은 수도 사업은 계획부터 준공까지 8~10년이 걸리는 반면 반도체 팹 완공에는 약 3~5년이 소요돼 공급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는 결국 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범정부 차원의 현안 해결과 인허가 절차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생산에는 많은 용수와 안정적인 공급이 요구된다. 박 처장은 12인치 웨이퍼 1장을 생산하는 데 하루 7톤 이상의 초순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민 23명이 하루에 쓰는 생활용수와 맞먹는 양이며, 팹 1기를 가동하는 데는 하루 10만~20만톤의 용수가 들어간다. 공급이 늦어지면 팹 가동이 지연되고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평택 고덕,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권 반도체 산단의 용수 공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각 사업의 공급 규모는 하루 47만톤, 150만톤, 106만톤이다. 이 가운데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통합용수공급사업에는 2034년까지 2조1554억원이 투입된다.
박 처장은 단지 조성 계획이 확정된 뒤 용수 공급 시설의 기본 구상에 착수하는 구조라 공급 요청 시기를 맞추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본 구상부터 타당성 조사와 입찰, 인허가, 공사까지 이어지는 절차 외에도 구간별 시공 여건, 토지 보상, 지방자치단체 간 수혜 불균형에 따른 반발이 사업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용인 사업은 1·2단계 타당성 조사를 통합하고 설계 기간을 24개월에서 12개월로 줄였지만, 용수 공급 요청 시기에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단계별 건설 절차를 통합·간소화하는 제도적 지원과 국토교통부,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지자체, 사업 시행자가 참여하는 범정부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부처 간 병목을 풀어 사업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력망 확충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이성학 한국전력공사 계통정책기획실장은 AI 산업 성장에 따라 전력 수요가 다른 에너지보다 2.5배가량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지난 60여 년간 설치한 송전선로의 약 70%에 해당하는 양을 2038년까지 확충하는 내용이 담겼다. 투자비는 72조8000억원으로 추산되지만, 송전선을 땅에 묻는 비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전력 수요가 수도권에 몰리고 재생에너지는 호남·영남과 해안 지역에 집중돼 장거리 송전망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피크 시간대 전국 전력 사용량 약 100GW 가운데 40%가량을 수도권이 사용하지만, 주민 수용성이 낮아 송전선로 사업이 10년 이상 지연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전력망 확충이 늦어지면 생산지의 전기를 버리고 수요지에서 LNG 발전기를 가동하는 중복 투자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에서 주현 도화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전력망과 용수 관련 논의를 하나의 거버넌스에서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좌장을 맡은 유철상 한국수자원학회 회장은 산업 입지가 정해진 뒤 전력과 용수 공급을 결정하는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며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