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서울의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사업에 정비구역 지정과 통합심의 권한을 자치구로 이양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제도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비업계에서는 가구수 기준을 두기보다 자치구청장을 법정 지정권자로 포함하는 도시정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정은 지난달 서울시 권한을 분산해 도심 주택공급을 빠르게 하겠다며 500가구 이하 정비사업의 정비구역 지정·통합심의 권한을 자치구청장에게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500가구 이하 정비사업은 193곳이지만, 이 중 정비구역 지정 단계인 곳은 31곳, 약 16%다. 나머지는 구역 지정 이후 절차를 진행 중이어서 지정권 이양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어렵다.
신속통합기획 대상지 중 아직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은 18곳, 6천87가구다. 서울시는 정비구역 지정 검토에 평균 84일, 통합심의에 평균 32일 등 약 116일이 걸린다고 밝혔다. 정비사업에 통상 12년가량 소요되는 전체 기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라는 설명이다. 또 가구수 기준을 맞추려고 사업구역을 나누거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도로·공원·학교 등 기반시설 계획이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공식 심의기간에 자치구와 서울시의 사전협의, 보완 요구가 반복되는 시간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499가구는 자치구, 501가구는 서울시가 지정하는 방식보다 자치구를 법정 지정권자로 정하고 광역적 영향이 큰 사업에는 별도 조정 절차를 두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자치구 이양 논의는 지난해 본격화됐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속통합기획 활성화와 서울시 권한 이양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조례나 법률을 개정해 자치구청장을 정비구역 지정권자로 확대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며, 지정권을 부여하면 불필요한 절차 없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는 1천가구 이하, 구역면적 5만㎡ 이하, 하나의 자치구 안에 있고 지하철 등 광역 기반시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업을 자치구가 직접 지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당시 논의는 토론회와 정책 제안에 그쳤고, 자치구청장을 지정권자로 포함하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발의되지 않았다. 천준호 의원은 조례나 법령 개정을 통해 한시적으로 시행한 뒤 제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한 이양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이도 법안 마련을 늦추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에 정비구역 지정과 도시계획 심의 권한이 집중돼 행정 병목이 생긴다며 자치구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자치구 이양이 서울시의 도시계획 권한을 약화시킨다고 반발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당정 발표 직후 서울시를 배제하고 서울시장의 인허가 권한을 구청장에게 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양 범위와 절차도 정해지지 않았다. 정비구역 지정권만 넘길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와 통합심의도 포함할지, 서울시 사전협의를 의무화할지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와 국민의힘은 주택공급뿐 아니라 교통·학교·공원 등 기반시설을 광역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안태준 의원은 지난 1월 정비구역 지정 지체로 사업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하거나 우려되는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지난 4월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뒤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으며, 국토교통위원회 의결이나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본회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국토부는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지정권이 겹칠 경우 행정 혼선과 책임 소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취지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자치구 이양안과 국토부 장관 직권 지정안이 함께 거론되는 가운데, 정비구역 지정체계를 어떤 방향으로 개편할지 정부와 여당의 정책 조율이 과제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