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건설사 폐업이 급증하는 가운데 공사를 마친 뒤에도 대금을 받지 못하거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채무가 현실화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중소·중견 건설사가 늘고 있다. 시행사와 시공사의 부실이 부동산신탁사로 번지는 양상이다. 사업 정상화를 위해 신탁사가 투입한 신탁계정대는 10조 원에 육박하고 대손충당금도 늘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불거진 PF 부실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27일까지 지방 종합건설업 폐업 신고 공고는 41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55건보다 63.9% 증가했다. 전문건설업 폐업 신고 공고는 같은 기간 1214건에서 1597건으로 늘었다.
종합·전문건설업을 합산한 폐업 신고 공고는 전년 동기보다 37.2% 증가했다. 전문건설업 증가율은 31.5%였다.
최근 회생절차에 들어간 태왕이앤씨는 지역 건설사의 유동성 악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 시공능력평가 전국 67위, 대구 지역 3위인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3231억 원과 영업이익 226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방 사업장의 공사대금과 대여금 회수가 늦어진 데다 약 1100억 원 규모의 PF 보증채무가 현실화하면서 자금난에 빠졌다. 지난달 말 회사의 보유 현금은 수억 원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견 건설사의 현금 사정도 빠듯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시공능력평가 30~100위권 가운데 재무 비교가 가능한 12개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년 새 1조 2732억 원에서 1조 1057억 원으로 13.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단기차입금은 8052억 원에서 8403억 원으로 4.4% 늘었다.
12개사 중 10곳이 영업이익을 냈지만 7곳은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였다. 장부상 수익과 실제 자금 흐름 사이에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미청구공사도 7013억 원에서 7870억 원으로 12.2% 증가했다. 미청구공사 자체가 부실을 뜻하지는 않지만, 청구와 회수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현금 흐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PF 부실 부담은 개발사업에서 시행사 대신 자금을 투입하거나 책임준공 의무를 맡아온 신탁 업계로도 옮겨가고 있다. 사업성이 나빠진 PF 사업장에서 분양대금이나 대출금만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신탁사가 자체 자금을 투입하는 사례가 늘면서 신탁계정대도 빠르게 증가했다.
금융투자 업계 집계에 따르면 14개 부동산신탁사의 순신탁계정대는 지난해 말 8조 9726억 원에서 올 상반기 9조 5165억 원으로 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탁계정대 대손충당금은 2조 6058억 원에서 2조 9329억 원으로 12.6% 늘었다. 사업장 투입 자금이 증가한 동시에 기존 자금의 회수 가능성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신탁사의 실적도 나빠졌다. 14개사는 올 1분기 당기순이익 759억 원을 기록했지만 2분기에는 1586억 원의 순손실을 내 상반기 누적 기준 827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을 중심으로 공사 지연과 미분양이 이어지며 신탁사가 대신 투입한 공사비 등이 장기간 묶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건설 업계는 PF 구조조정이 진행되더라도 기존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 주택 시장과 비아파트 시장의 회복이 더딘 데다 공사비와 금융 비용도 높은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 PF 공급 여부와 별개로 이미 진행된 사업장에서 공사 대금과 투자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느냐가 건설사와 신탁사의 재무 건전성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며 “사업장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시공사와 신탁사의 손실 부담도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