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을 반복해서 경험한 가계일수록 환율 상승기에 소비를 덜 줄이는 경향이 있다는 한국은행 연구 결과가 나왔다. 외환위기를 겪은 X세대와 자산이 적거나 빚 상환 부담이 큰 가계에서 이런 양상이 두드러졌다.
최영준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10월 1일 발표한 「환율급등 경험과 가계소비 간의 관계 분석」에서 이같이 밝혔다. 환율 상승은 수입가격을 높이고 실질 구매력을 낮춰 소비를 위축시키지만, 외환위기 이후 환율 급등이 반복되면서 소비 감소 폭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것으로 분석됐다.
환율 급등 경험 많을수록 소비 위축 제한
최 연구위원은 1998~2024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환율 급등 경험과 소비 위축 완화의 관계를 살폈다. 가구주 연령과 환율을 결합하고 최근 경험과 환율 급등기에 더 높은 가중치를 적용했다. 분석 결과, 과거 환율 급등 경험이 많을수록 현재 환율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 정도가 작았다.
최 연구위원은 반복된 충격을 겪으며 가계가 구매력 저하에 대응하는 방식을 익히고, 환율 상승을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외환보유액 확충과 통화스와프 등 정책 당국의 안정화 노력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봤다.
소비 항목 중에는 기초소비재보다 선택재에서 적응 경향이 뚜렷했다. 선택재는 필수 지출보다 구매 시기나 품목을 조절하기 쉬워, 과거에 익힌 소비 조절 방식이 더 잘 드러난 것으로 분석됐다.
X세대는 양(+)·MZ세대는 음(-)의 효과
세대별로는 과거 환율 급등 경험이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X세대에서 유의미한 양(+)의 값, MZ세대에서는 음(-)의 값을 보였다. 최 연구위원은 X세대가 경제활동과 자산 형성 과정에서 환율 급등을 반복해서 겪으며 소비 구조를 조정하는 방식을 익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MZ세대는 고환율을 경험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학습·적응 기회가 적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자산별로는 하위 2분위에서 적응 효과가 뚜렷했으나, 상위 4~5분위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뜻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높은 가계에서도 적응 양상이 나타났다. 자산이 적은 가계는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작아 지출 조정 방식을 익혔을 수 있고, 자산이 많은 가계는 보유 자산으로 대응해 과거 경험에 따른 소비 차이가 작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환율 급등 경험과 함께 발생한 실업·소득 감소 등 다른 충격의 영향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최 연구위원은 단기 충격 완화와 함께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가계의 적응을 돕고, 적응 과정에서 계층 간 소비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