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사는 한 31세 직장인은 최근 7년 동안 매달 10만원씩 납입해온 주택청약종합저축을 해지했다. 서울 주요 지역의 33평형 분양가가 10억원을 훌쩍 넘는 수준으로 오르면서 청약으로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가점제 중심의 현 제도에서 20대와 30대 초반이 당첨될 확률은 로또 수준에 불과하다”며 “가까스로 당첨된다 해도 계약금과 중도금, 대출 이자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 차라리 통장을 깨서 시드머니를 만드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분양가 상승과 높아지는 청약 문턱에 지친 2030세대가 전통적인 내 집 마련 방식에서 멀어지고 있다.
2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는 2574만5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만275명 감소했다.
감소세는 올해 들어 더 가팔라졌다. 지난해 말 2618만4107명이던 가입자 수는 지난달까지 44만3583명 줄어, 지난해 연간 감소 폭보다 이미 14만 명 이상 큰 것으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청약 가점이 낮은 2030세대의 이탈이 전체 가입자 감소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필수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졌던 청약통장이 청년층 사이에서 실효성이 낮은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자금은 주식·상장지수펀드(ETF)나 소형 주택 매매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30세대의 증권 계좌 개설은 꾸준히 늘고 있다. 배당주와 미국 지수를 추종하는 ETF, 테마형 종목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두드러진다. 청약으로 자산을 늘리는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위기감과 박탈감이 작용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청약으로 대단지 아파트를 분양받기보다 서울과 수도권 역세권의 소형 빌라, 오피스텔, 나홀로 아파트를 매입하는 2030세대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 주택 시장에서 30대 이하의 매수 비중은 전체의 35~40%를 웃도는 수준이다. 대형 아파트 진입이 어려워지자 소액 대출과 보유 현금으로 소형 주택이나 빌라를 매입해 실거주와 투자를 함께 해결하려는 청년층의 대응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청약 포기가 단순한 투자처 변경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주거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결혼 기피와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청년들이 청약을 포기한다는 것은 장기적인 주거 안정의 꿈을 접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치솟는 분양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청년 전용 특별공급 물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실효성 있는 금융 대출 지원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청약 기피 현상과 주거 사다리 붕괴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