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공공기관에 맡겨 반환 불안을 줄이고, 집주인은 매달 월세와 비슷한 수익을 얻는 전월세 안심신탁이 이달 말 처음 선보인다. 출범을 앞두고 약정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임대소득세를 한 자릿수 세율로 낮춰 임차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추진된다. 전세사기로 위축된 비아파트 임대차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월세 중심으로 바뀐 주택시장을 전세로 유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26일, 지난 22일 전월세안정화기구를 출범시켰으며 이달 말 안심신탁에 참여할 임대인과 임차인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최인호 HUG 사장은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주택과 신탁관리회사(AMC) 등을 비롯해 안심신탁사업 약정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잠재적으로 2조~3조 원을 확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HUG는 연간 전세금 신탁 목표를 15조 원으로 잡았으며, 이를 통해 약 9만 3000가구의 주택 공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전월세안정화기구는 전세보증금을 직접 관리하는 전담기구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와 비슷한 역할을 맡는다. 임차보증금을 주택 공급 재원으로 활용해 중소 건설사의 자금난을 덜고, 장기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데도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11월부터 전세가격 검증과 약정을 진행하고, 내년 1월부터 잔금 예탁과 입주를 추진한다. 주택공급활성화펀드는 내년 2월 설정·등록을 목표로 한다.
HUG가 제시한 사례를 보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74만 원인 빌라를 전세 2억 원으로 바꿀 경우 세입자는 자기자금 4000만 원과 대출 1억 6000만 원이 필요하다. 연 3.97% 금리를 적용하면 월 이자는 약 53만 원이다. 자기자금은 3000만 원 늘지만, 월 주거비는 20만 원 이상 줄고 반환보증료도 아낄 수 있다.
집주인은 연 4.35% 수익률을 가정할 때 세전 월 72만 5000원을 받는다. 기존 월세와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얻으면서 연체 걱정을 덜고, 공실이 발생해도 최대 2개월간 수익을 보장받는다. 등록임대사업자는 임대보증금 보증료를 절감할 수 있으며, 임대소득에 한 자릿수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가입 대상은 우선 시세 20억 원 이하 주택이다. 주택 유형이나 소득·자산에 따른 제한은 없다. 근저당이 설정된 주택과 월세·반전세도 참여할 수 있지만 보증금 전액을 맡겨야 한다. 가입은 자율이며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유지된다.
HUG는 보증금을 맡기는 임대사업자의 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 대출 보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존에는 보증금을 건설비나 주택 구입에 사용할 수 있었지만, 신탁에 가입하면 해당 자금을 직접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감정가의 60% 수준인 모기지보증 한도를 70~75%로 높여 사업자가 추가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다.
원금 손실 위험은 HUG 보증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조한준 HUG 안심신탁기획실장은 “HUG가 보증하는 대출 형태로 펀드를 시작하면 대출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할 경우 HUG가 책임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향후 발생할 월세 수익을 담보로 미리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장 4년간의 월세 수익을 채권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1만 가구에서 4년간 받을 월세가 3000억 원이라면, 이를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해 사업자의 유동성을 보완할 수 있다. 여유 자금이 없는 임대인에게 전세신탁 가입을 전제로 전세퇴거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최 사장은 “일각에서 가계대출 총량 관리 기조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전세금을 HUG에 예탁하는 사례는 갭투자라 볼 수 없다”면서 “전세퇴거자금대출을 가계대출총량 관리에서 예외로 할 수 있는지 금융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세입자에게는 안심신탁 가입 주택에 입주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저리 전세대출을 제공할 예정이다. 5대 시중은행과 상품 출시 협의를 대부분 마쳤으며, 금리 등 최종 조건을 조율하고 있다. 집주인의 자금 부담과 세입자의 대출 이자를 함께 낮춰 안심신탁 참여를 확대한다는 취지다.
최 사장은 “안심신탁은 임차인에게는 전세사기 걱정 없이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안전한(safe) 전세를, 임대인에게는 연체 걱정 없는 안정적인(stable) 월세를,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 공급(supply)의 ‘3S’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