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30조원 규모의 도시 재건축이 본격화하고 있다. 목동신시가지 1~14단지의 기존 2만6000여가구가 재건축에 나섰으며, 현재 정비계획대로 사업이 완료되면 약 4만7000가구 규모의 새 주거도시로 바뀐다. 한 생활권에서 14개 대단지가 동시에 움직이는 사례는 서울 주요 재건축 사업 가운데서도 드물다.
목동 일대는 안양천 제방이 갖춰지기 전까지 저지대와 농경지가 섞여 있던 지역이었다. 지명도 나무 목(木)이 아니라 기를 목(牧)을 쓰는 ‘목동(牧洞)’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모습이 크게 달라진 것은 1980년대다. 서울시는 주택 부족과 부동산 투기 과열, 지역 불균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 ‘2000년대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고 도시구조 다핵화를 추진했다. 1983년에는 목동 신시가지 개발계획을 내놓아 주택을 대량 공급하고 서울 서부권의 새로운 중심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했다.
목동은 상업·업무시설과 주거를 함께 둔 자족형 ‘도시 안의 신도시’를 목표로 설계됐다. 남북으로 완만한 S자형 중심축과 일방통행 도로체계, 열병합발전소를 이용한 지역난방을 갖춘 계획도시였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1~14단지가 차례로 조성됐다. 학교와 공원,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학원가와 우수 학군이 형성됐고, 목동은 대치동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교육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같은 구상 아래 조성된 14개 단지는 약 40년 만에 다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속도, 시공사, 사업성, 현재 몸값, 변수 등 다섯 가지 측면에서 목동 재건축의 구도를 살펴본다.
사업 속도: 6단지가 선두
사업 속도에서 앞선 곳은 6단지다. 지난 5월 목동 14개 단지 중 처음으로 서울시 정비사업 통합심의를 통과했다. 기존 1362가구를 최고 49층, 2170가구로 재건축하는 계획이다. 시공사는 DL이앤씨로 정해졌으며, ‘아크로 목동리젠시’를 제안했다.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과거 6단지가 특별히 선호도가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현재는 빠른 사업 속도 자체가 프리미엄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후에는 안양천과 한강 방향 조망을 함께 확보할 가능성이 있어 기존과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목동에서는 17단지를 ‘앞단지’, 814단지를 ‘뒷단지’라고 부른다. 행정구역도 앞단지 대부분은 목동, 뒷단지는 신정동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앞단지와 뒷단지의 시세 차이가 뚜렷했지만, 최근에는 뒷단지 일부가 재건축을 더 빠르게 추진하면서 격차가 상당히 줄었다는 설명이다.
1·2·3단지는 당초 제2종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종상향 절차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렸다.
한때 선두권으로 꼽혔던 13단지는 서울시 통합심의에서 한 차례 보류된 뒤 설계를 보완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최고 49층 주동을 다수 배치하면서 동별 높이 차이가 충분하지 않은 점 등이 목동 택지지구 정비계획의 경관·배치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시는 최고 49층 계획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최고층 주동을 전체의 10% 안팎으로 줄이고 높이를 다양화해, 안양천변을 향해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스카이라인을 만들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계를 보완해 재심의를 신청한 13단지는 지난 21일 서울시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에서 조건부 의결됐다. 기존 2280가구는 최고 49층, 3852가구 규모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9단지도 같은 날 통합심의를 조건부로 통과해 선두권에 합류했다. 기존 2030가구를 최고 49층, 3958가구로 재건축하는 계획이다. 10단지는 사업시행자 지정 이후 통합심의 소위원회 절차를 밟고 있으며, 현대건설이 시공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시공사: 대형 건설사 경쟁 본격화
목동 재건축 시장을 둘러싼 건설사들의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시공권을 확보한 곳은 DL이앤씨로, 지난 6월 6단지 시공사로 선정됐다. 10단지에서는 현대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디에이치 목동 에세르’를 제시했다.
12단지는 GS건설 쪽으로 판이 기울고 있다. 1차 본입찰에서 GS건설만 응찰해 유찰된 데 이어 재입찰 현장설명회에도 GS건설만 참석했다.
13단지에서는 삼성물산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차 입찰에 단독 응찰했고, 해외 설계사와 함께 대안설계를 마련해 ‘목동 첫 래미안’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민들의 관심이 큰 사업장은 아직 시공사 경쟁이 본격화하지 않은 4·7·14단지다. 특히 7단지에서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한 조합원은 주민마다 선호하는 브랜드가 뚜렷하다며, 한때 홀수 단지를 삼성물산이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최근 현대건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물산이 일찍부터 활동해온 데다 현대건설도 최근 세력을 넓히면서 관심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두 회사가 실제로 정면승부를 벌일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있다. 목동에 14개 단지가 있는 만큼 건설사들이 한 곳에서 출혈경쟁을 하기보다 원하는 단지를 나눠 맡는 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나온다.
예상과 다른 단지에서 경쟁입찰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선호도가 높은 곳은 대형 건설사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 단독 응찰로 정리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단지에는 여러 건설사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참여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6단지는 DL이앤씨가 시공권을 확보했고, 10단지는 현대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12단지와 13단지는 각각 GS건설과 삼성물산의 단독 응찰 구도가 형성됐다.
반면 8단지는 대우건설·DL이앤씨·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등이 관심을 보여 상대적으로 여러 건설사가 경쟁할 가능성이 큰 사업장으로 꼽힌다.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현대건설 등 주요 건설사는 목동에 별도 홍보관과 라운지를 마련해 조합원과 주민에게 브랜드, 설계 콘셉트, 금융조건 등을 알리고 있다.
사업성: 낮은 용적률의 5단지
목동 재건축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낮은 용적률이다. 1980년대 저밀도로 조성된 목동신시가지의 기존 용적률은 대부분 116~125% 수준으로,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와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용적률이 낮으면 새 아파트를 지을 여지가 커진다. 재건축 후 일반분양 물량이 늘수록 조합이 확보할 수 있는 수익도 증가하고, 조합원의 추가분담금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시세와 별도로 사업성을 주목받는 단지도 있다.
대표적인 곳은 5단지다. 한 조합 관계자는 5단지의 기존 용적률이 약 116%로 목동 14개 단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평형 중심으로 구성돼 조합원 대지지분도 상대적으로 커 사업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거래가격으로는 7단지가 대장으로 꼽히지만, 재건축 사업성만 보면 5단지처럼 주목받는 곳도 있다는 설명이다.
14단지는 사업 규모가 크다. 기존 3100가구가 재건축 후 5123가구로 늘어나 목동 14개 단지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진다. 늘어나는 가구 수만 2000가구를 넘는다. 다만 사업구역이 3개 블록으로 나뉘어 있어 시공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한 조합 관계자는 초기에는 3개 블록의 규모를 고려해 건설사 컨소시엄 방식도 검토했지만, 신탁사와 정비사업위원회는 단독 시공 방향을 잡았다고 전했다. 이 문제를 두고 내부적으로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몸값: 7단지가 대장
현재 목동에서 대장 단지를 꼽으면 7단지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 조합 관계자는 7단지가 목동역과 가까운 역세권이고 현대백화점 접근성이 좋으며, 목운초·목운중이 목동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학군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입지 여건을 바탕으로 7단지는 재건축 전부터 다른 단지보다 높은 매매가격을 유지해왔다. 가구 수가 가장 많은 전용면적 66㎡(약 27평)는 지난 3월 28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평당 1억원을 웃도는 가격이다.
다만 재건축 이후에도 현재 순위가 그대로 이어질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과거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6단지는 가장 먼저 통합심의를 통과하고 사업시행인가를 준비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 평형 위주인 5단지는 고급화 가능성이 큰 단지로 꼽힌다. 전용면적 152㎡(약 53평)는 지난 6월 41억원에 거래됐다. 2층 매물로, 목동신시가지에서 거래금액 기준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조망 가치도 달라질 수 있는 요소다. 6·13·14단지는 안양천변에 있어 고층 재건축 후 수변 조망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다. 1단지와 6단지는 한강 조망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뒷단지 가운데서도 개별적인 강점을 지닌 곳이 있다. 14단지는 재건축 후 5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단지가 된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면 단지 내 커뮤니티와 기반시설에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9단지는 서울남부지방법원과 서울남부지검이 가까워 ‘법조타운’ 주거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 조합 관계자는 9단지가 뒷단지에 속하지만 법원과 검찰청이 가까워 직주근접 측면에서 목동 내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약점이 분명한 단지도 있다. 11단지는 기존 주택이 중소형 평형 중심이고, 김포공항 항공기 소음도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는 지역으로 꼽힌다.
변수: 고도제한·이주·공사비
목동 재건축에는 시간 제약도 변수로 작용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공항 주변 고도제한 국제기준을 개편했으며, 새 기준은 2030년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김포공항과 가까운 목동은 비행안전구역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 14개 단지가 추진하는 재건축 계획 상당수는 최고 40~49층이다. 새 기준이 국내법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느냐에 따라 층수 계획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비업계에서는 2030년 전에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현재 설계안을 확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고도제한과 함께 현실적인 문제로 꼽히는 것은 이주다. 기존 2만6000여가구가 재건축에 들어가면 주민들은 다른 주거지를 찾아야 한다.
목동은 학군이라는 특성이 있다. 자녀가 목동 학교와 학원가를 이용하는 가정은 이주 기간에도 목동 생활권을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여러 단지가 동시에 이주하면 목동과 신정·신월동, 강서·영등포 일대 전월세 시장에 단기간에 대규모 수요가 몰릴 수 있어 단지별 이주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사비도 변수다. 14개 단지가 동시에 대규모 공사를 추진하면 건설 인력과 자재, 시공사의 수주 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육시설 문제도 남아 있다. 아파트 가구 수가 약 2만6000가구에서 4만7000가구로 늘어나는 만큼 학교와 도로, 상업시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아파트가 완공돼도 새 도시가 완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왕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40년 전 하나의 구상 아래 조성된 목동 14개 단지는 이제 사업 속도와 브랜드, 사업성을 앞세워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현재는 6단지가 가장 빠르고 7단지가 가장 비싸며 14단지가 가장 크지만, 재건축이 끝난 뒤의 순위까지 결정된 것은 아니다.
목동의 다음 대장은 입지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인허가를 얼마나 빨리 통과하는지, 어떤 시공사를 선정하는지, 일반분양 물량을 얼마나 확보하는지, 공사비와 이주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는지에 따라 새 순위가 만들어질 수 있다. 1980년대 같은 신도시로 출발한 14개 단지가 2030년대에는 서로 다른 몸값으로 나뉠 수 있다는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