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에서는 정책 결정뿐 아니라 착공 이후 건물을 짓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서울 재개발·재건축은 정비구역 지정부터 준공까지 평균 13년이 걸린다. 정부는 올해 8월 발표한 ‘주택 신속 공급 방안’에서 택지 발표 후 착공까지 걸리는 기간을 37개월로 단축하고, 수도권에 ‘23만 가구+α’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인허가와 택지 조성을 앞당기는 것과 함께 착공 이후의 공사 기간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모듈러 건축은 주택의 상당 부분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기초공사와 모듈 제작을 동시에 진행해 통상 공사 기간을 20~30% 줄일 수 있으며, 2년 걸리는 공사를 1년 6개월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 공장 생산은 날씨와 현장 인력 수급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품질을 일정하게 관리하기 쉽다. 정부는 모듈러 공법을 통한 공급 체계 혁신을 과제로 포함하고, 공공주택 발주 물량을 2030년까지 연간 5000가구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비용과 제도적 한계가 꼽힌다. 모듈러 공사비는 현장 시공보다 약 30% 높고, 공급 사례도 원룸형이나 저층 중심이어서 중대형 주택으로 넓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장 시공을 전제로 마련된 인증 체계와 발주 절차도 모듈러 건축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물량이 적어 단가를 낮추기 어렵고, 높은 단가가 다시 물량 확대를 막는 구조다. 싱가포르와 영국은 제조·조립 기반 건설 방식(DfMA)과 모듈러 건축을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2층과 25층 규모의 고층 모듈러 건축이 추진되고 있다.
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국회에 계류 중인 ‘모듈러 건축 활성화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가 제시됐다. 품질 인증과 발주 제도 개선, 재정 지원 등 산업 활성화에 필요한 기반을 하나의 체계로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술 개발은 공사비를 낮추고 높이와 평면 규모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기존 모듈러 대비 공사비 25% 절감, 전용 84㎡ 이상의 중대형 평면, 30층 이상 고층화를 목표로 설계부터 제조 자동화까지 전 주기에 걸친 국가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 발주 물량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과제로 제시됐다. 기업이 공장과 자동화 설비에 투자하려면 안정적인 수요가 뒷받침돼야 하며, 연도별 발주 계획을 미리 제시하면 규모의 경제를 앞당기고 공사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택 공급의 속도를 높이려면 착공 이후의 시간을 줄일 법·기술·수요 기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