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강원도의 채무보증 불이행 선언으로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는 지방자치단체의 지급보증에 대한 불신을 키우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전반에 충격을 줬다. 자체 자금력이 약하고 지방 사업 비중이 큰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금융권이 신규 PF를 줄이고, 공급 자금도 분양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 대형 주거 사업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PF 한파가 4년째 이어지면서 중소·중견 건설사의 주택 공급 물량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토지 매입과 인허가 등에 필요한 초기 단계 자금인 브리지론은 대출 문턱이 특히 높아 신규 사업장 발굴을 통한 공급 회복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소·중견 건설사에 대한 자금 지원과 제도 개선으로 건설 경기 회복과 주택 공급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분기 연속 자금 순유출…우량 사업장에 집중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권의 PF 기피는 신규 자금 위축과 우량 사업장 쏠림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개발사업과 주택 공급이 위축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과 주택 공급에 투입되는 자금의 전체 규모도 크게 줄었다. 금융권은 PF 위험을 낮추기 위해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고 대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회수한 자금만큼 신규 자금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2년 동안 금융권이 부동산 PF에서 회수·정리한 자금은 202조 8000억 원이었다. 같은 기간 신규 공급액은 141조 5000억 원에 그쳤다. 분석 대상인 8개 분기 모두 신규 공급이 회수·정리액의 70% 수준에 머물렀고, 2년간 총 61조 3000억 원이 부동산 시장에 다시 유입되지 않았다.
분양성이 확인된 사업장에 자금이 몰리는 흐름도 나타났다. 시장에 들어오는 자금이 줄어든 가운데, 남은 자금도 서울·수도권 대형 건설사의 아파트 사업에 집중됐다. 한국신용평가(KIS)가 증권·캐피털 51개사가 참여한 약 3600개 PF 사업장, 총 50조 원 규모의 자금 흐름을 분석한 결과, 시공능력 순위 100위 이내 건설사의 아파트 본PF 잔액은 2024년 2분기 7조 9000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5조 7000억 원으로 거의 두 배 늘었다.
반면 시공 순위 100위 밖 건설사의 본PF 잔액은 같은 기간 6조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90% 넘게 줄었다. 지역과 사업 유형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다. 서울 오피스 본PF 잔액은 2년 사이 1조 1000억 원에서 4조 5000억 원으로 네 배 늘었지만, 비서울 오피스는 5000억 원에서 4000억 원으로 20% 감소했다.
금융권의 위험 회피로 공급 위축 우려
이 같은 양극화의 배경에는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이 2~5%에 그쳐 시공사 신용보강 등에 의존하는 국내 PF의 취약한 구조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전에는 별다른 보증이 없어도 PF 대출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후로는 대형 건설사조차 이중·삼중의 신용보강을 요구받는다”며 “채무 인수 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중견 건설사의 사업장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별 부동산 경기 차이도 자금 쏠림을 부추기고 있다. 서울 오피스와 수도권 아파트는 공급 부족과 주택 전월세난 속에 가격이 오르고 매수세가 살아나는 반면, 지방은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만 2만 5000여 가구에 달해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금융기관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수도권 우량 사업장을 선별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쏠림은 향후 공급절벽과 지역 간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건설업계는 특히 브리지론 경색을 걱정하고 있다. 토지 매입과 인허가에 쓰이는 브리지론은 미래 공급 파이프라인의 출발점이지만, 초기 단계부터 자금 공급이 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수도권 중심으로는 분양 물량이 늘어났지만 과거 인허가를 받아뒀던 기존 사업장의 ‘밀어내기 분양’이 대부분”이라며 “초기 개발에 병목이 생기며 당장 내년부터 대형 건설사 물량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주택 누적 인허가 물량은 14만 2328가구로 전년 동기보다 약 8% 감소했다. 4년 전인 2022년의 29만 4000여 가구와 비교하면 51.9% 줄어든 규모다. 한신평 조사에서 브리지론 잔액은 올해 1분기 10조 원으로 집계됐으며, 2년 전보다 5조 원 감소했다.
정부는 8·13 주택 공급 대책에서 공적 PF 보증 규모를 86조 원으로 확대하고 중소 건설사 특별 보증도 늘렸지만, 현장의 자금 경색을 풀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산연 관계자는 “정부의 공적 보증으로 줄어든 신용 위험이 실제 조달금리 완화와 금융 조건 개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며 “PF 사업성 평가도 단기 분양률뿐 아니라 임대 수익, 장기 공실 위험, 지역 경제 파급효과까지 함께 반영하는 방식으로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