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 사업에서 허위·과장 광고나 사업 지연을 이유로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탈퇴한 조합원들의 승소 판결은 이제 드물지 않다. 하지만 승소 판결이나 화해권고결정을 받아도 분담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조합의 자력이 이미 바닥난 데다 조합원 분담금이 신탁회사 명의 계좌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탈퇴 조합원이 조합을 채무자, 신탁사를 제3채무자로 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으면 신탁사로부터 바로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2026년 8월 13일 선고한 2026다203000 판결에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신탁사의 자금집행 보류권을 폭넓게 인정해 탈퇴 조합원의 추심 청구에 제동을 걸었다.
원고들은 한 지주택 추진위원회와 가입계약을 맺고 분담금을 납부했다. 이후 조합을 상대로 계약 무효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소송을 제기했고, 분담금 반환을 명하는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됐다. 원고들은 이를 집행권원으로 삼아 조합이 자금관리 수탁자인 신탁사에 대해 가진 채권을 압류하고 추심명령을 받았다.
원고들은 신탁사를 상대로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에서 조합원 환불금이 최선순위 집행 대상이라고 정했으므로 추심금을 즉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탁사는 계약서에 향후 현금수지 부족분이 예상되거나 차기 선순위 자금 집행에 영향이 있을 경우 자금집행을 보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며 지급을 거절했다.
1심과 항소심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상 조합원 환불금이 최선순위 집행 대상이므로 선순위 침해 문제가 없고, 사업이 완전히 무산돼 자금이 없다는 사실도 객관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신탁사가 보류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두 가지 이유로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먼저 신탁사는 압류 전에 조합에 주장할 수 있었던 계약상 절차와 요건, 보류 사유를 압류채권자에게도 내세울 수 있다고 봤다. 신탁계약과 자금관리 대리사무계약은 조합의 자금 유용을 막고 사업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계약서에는 환불금뿐 아니라 제세공과금과 신탁보수 등도 최선순위로 규정돼 있었고, 가압류나 압류가 발생하면 집행을 유보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대법원이 주목한 신탁계좌 잔액은 약 2억7천만 원인 반면, 다른 채권자들의 압류·가압류 등 권리제한 금액은 34억 원에 달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현저한 불균형이 대리사무계약에서 정한 ‘향후 현금수지 부족분이 예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신탁사의 자금집행 보류가 정당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지주택 탈퇴와 분담금 반환 실무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조합을 상대로 계약 무효 판결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신탁사를 상대로 추심금 청구를 제기할 때는 대리사무계약의 집행 요건과 보류 조항을 면밀히 살펴야 하며, 이를 확인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하면 비용을 들이고도 패소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신탁계좌에 잔액이 있더라도 다른 탈퇴자나 시공사, 대행사 등의 가압류·압류가 이미 설정돼 있다면 신탁사가 이번 판결을 근거로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원문은 집행에 앞서 사실조회나 재산조회를 통해 신탁계좌의 실제 잔액과 권리제한 규모를 파악하고, 소송 초기부터 판결 이후의 집행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