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의 다가구주택을 4억 8천만 원에 사기로 한 박 씨는, 매도인 윤 씨가 계약 뒤 “거래를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다”는 말을 거듭하자 불안해졌습니다. 박 씨는 잔금 2억 4천만 원이 든 계좌의 통장 사본과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중개사 이 대표에게 맡기고, 윤 씨에게 한 달 안에 등기 절차를 진행하라고 알렸습니다. 윤 씨가 움직이지 않자 박 씨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잔금 계좌의 통장 사본을 보여주고 이행을 요구했는데도 매도인이 응하지 않으면,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까요?
잔금 지급과 소유권이전등기처럼 서로 맞물려 이행해야 하는 계약에서는,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해제하려는 쪽도 원칙적으로 자기 의무를 이행 제공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에는 실제로 이행할 준비를 마친 뒤 그 사실을 알리고 수령을 요구해야 하며, 준비만 해둔 상태로는 부족합니다.
잔금이 계좌에 있다는 통장 사본을 제시하는 것도 잔금 지급을 준비했다는 표시일 뿐, 그 자체로 적법한 이행 제공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이행을 거절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보인 경우에는 자기 채무를 따로 이행 제공하지 않고 해제할 수 있는 예외가 있습니다. 그 거절이 명백했는지는 계약 전후의 사정과 당사자의 행동을 종합해 판단합니다.
이 사례에서는 윤 씨의 말이 계약을 확실히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 점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통장 사본을 맡기고 제시한 것만으로는 적법한 이행 제공이라고 보기 어려워 박 씨의 해제가 효력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잔금이 준비돼 있다는 증거와 잔금을 실제로 이행 제공한 것은 다릅니다.
참고: 민법 제460조, 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7다54979 판결,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5다63337 판결,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8다3053, 3060 판결, 대법원 2004. 12. 9. 선고 2004다49525 판결